베단타(인도고대경전)에서는 말합니다. 고대 이래로 찾아왔던 세상 모든 현자들은 이미 우리 자신의 가슴 속에 있으며,
당신이
들었던 목소리는 진리의 소리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현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방향은 틀렸습니다.
당신이 생각했던
자유의 이상은 맞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당신 외부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실수였습니다.
그 이상을 가까이, 더
가까이 당신 자신에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그것이 언제나 당신 안에 있었으며 당신 자신의 참자아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유는 당신 자신의 본성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부싯돌이나 마른 나무 안에 불꽃이 들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불을 불러 내기
위해서는 마찰이 필요합니다.
자유와 순수라는 불꽃은 개체적 특성이 아니라 모든 영혼의 본성입니다. 왜냐하면 특성이란 획득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잃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자유와 하나입니다. 영혼은 존재와 하나입니다. 영혼은 깨달음과 하나입니다.
"존재-깨달음-지복"은 영혼의 본성이자 타고난 우리의 권리입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외형적 존재들은 그것의 표현입니다.
희미하든 뚜렷하든 모든 것은 영혼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은 '스스로 있는 자'이며 초인격적이며 전지하며 '아는 자(Knower)'이며 자연의 지배자이며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는 모든 예배의
대상이며,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경배는 그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시다.
경이로운 모든 것,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찬양까지도 신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당신이 악을 행할때 그 배후의
충동 역시 자유라고 말하겠습니다. 잘못 인도되었고 잘못 이끌렸다 하더라도 그 충동 뒤에는 개인마다 현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 뒤에 자유가 없었다면 어떤 삶이나 충동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우주의 맥박 안에서 숨을 쉽니다.
우리 안에는 자유롭고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아닙니다.
마음도 아닙니다 육체는 매순간 죽어 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육체는 조합이며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나 마음은 결코 모든 변화를 넘어선 상태에 이를 수 없습니다.
거친 물질의 일시적인 껍질을 넘어서, 마음이라는 섬세한 덮개를 넘어선 자리에 인간의 참자아인 아트만이 있습니다.
아트만은 영원하며 언제나 자유롭고, 생각과 물질이 겹겹이 쌓인 층을 뚫고 스며 나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온갖 이름과 형태에도 제한 받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아트만의 빛은 무지의 가장 두터운 층도 투과하며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합니다. 그것은 아트만이
불멸, 축복, 평화, 신성이라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아트만은 인간의 참 모습, 두려움을 모르며 죽음을 초월한 자이며 자유인입니다.
영혼은 늘 울부짖습니다. "자유, 오, 자유!"
인간에게 자유를 향한 갈망이 없다면 그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타고난 노예다. 나는 속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성상 속박되지 않은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자유로우며 자연의 지배자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인식은, 속박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둘 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빛은 결과입니다. 식물조차도 자유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자유는 성장의 유일한 조건이며 자유를 빼앗기면 퇴화합니다.
자유와 가장 숭고한 사랑은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둘 중
어느 것도 속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를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는 알든 모르는 모두 자유의 목소리를 따라갑니다.
마치 마을 어린이들이 피리 부는 사내의
곡조에 이끌려 가듯, 우리는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 자유의 곡조를 따라갑니다. 그것은 거기에 우리의 안식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자유의 목소리를 따를 때 우리는 지혜롭고 순수해집니다.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것에서부터 가장 높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이 자유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세상만물의 경쟁속에서 우리는 더불어 하나가 되기도 하고 서로
상충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경쟁, 기쁨, 투쟁, 생명, 쾌락, 죽음이 옵니다.
온 우주는 단지 그 자유의 목소리에 가
닿으려는 맹렬한 몸부림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생명본성의 발현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장면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해하자마자 모든 장면이 바뀝니다.
마야(환영)라는 소름끼치는 전투장이었던 바로 그 세상이 이제
선하고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이 끔찍하다거나 세상 일에 푸념하지 않게
됩니다.
더 이상 눈물도 통곡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 목소리를 알아듣자마자 우리는 왜 이런 투쟁과 싸움, 경쟁, 고난, 잔혹함, 그리고
작은 쾌락과 기쁨이 있어야만 했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만물의 본성에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없이는 우리에게 궁극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알든 모르든 그 목소리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삶, 모든 자연은 자유에 이르고자 투쟁하는 것이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선은 가장 높은 자유입니다.
오직 하나의 목적
물질의 속박과 사악한 말에서 자유롭게 하는 행위야말로 선입니다. 이 세상의
번뇌는 끝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의 원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원의 시작과
끝은 다시 만납니다. 그래서 세상 어느 곳에 가도 휴식과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물질세계의 법칙이 지배하는 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삶에서 이루어야 할 오직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무크티(Mukti - 환영과 무지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해야 할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크티, 곧 자유입니다. 경전은 말합니다. 하늘의 하늘 위에 올라도 우리는 여전히
노예라고.....
당신이 2만 년 동안 왕 노릇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육체를 입고 있는 한,
당신이 행복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
시간이 당신을 구속하는 한,
당신이 공간에 갇혀 있는 한,
당신은 노예입니다. 그러므로 무크티란 육체와
에고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당신의 발치에 그 에고를 벗어 버리십시오. 당신은 그것을 밟고 지나가 그것을 넘어섬으로써
자유롭고 영광스러워져야합니다. 진정한 자유인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즐거움도 없고 슬픔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넘어선,
말할 수 없는 지복이며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환희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통념으로 행복이라, 선이라 부르는 것은 이 영원한 지복의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속받지 않는 영원한 지복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내면의 집중 속에서 영혼은 거친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됩니다.
욕망, 무지, 불평등-이것은 속박의 삼위일체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더 낮은 형태에 머무를 때도 있고 더 높은 형태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삼스카라(samskara-전생의 행위로 인한 정신의 경향성)를 따라,
혹은 막연한 느낌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영혼이 자유를 얻을 때는,
오직 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형태 속에 머무를 때입니다.
온 우주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신성)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경시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사실을 모를 뿐입니다.
경시하고있는 것 역시 같은 신을 예배하는 다른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경시하고 있는 사람 역시 자신만의 좀 더 나은 자유를 향해 투쟁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여행은 산스크리트어로 삼사(윤회바퀴)라 불립니다. 모든 피조물은 이 바퀴를 거쳐 자유롭게 되고자 합니다.
우주적 외침
우리가 깨달음을 원하는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유를
향한 우주적 외침,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는 사회에 대해 분노하거나 타도할 필요도 없으며 자아를 죽이기 위해 숲이나 동굴로 들어갈 필요도 못느낍니다.
다만 우리는 내면의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며 자신을 관조할 때, 비로소 전체를 이해하게됩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대로이지만 새로운
의미를 띱니다. 우리는 아직 삶의 참다운 목적을 모릅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세상의 모습을 보고 그 본질을 헤아리게 되는 것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자신을 점유했던 소위 법, 운명 혹은 숙명 따위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한 쪽 면일 뿐이며, 다른 면에는 언제나 자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지껏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맹수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땅에 얼굴을 묻고 악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이러한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맹수의 두려움은 마음을 지배한 에고
때문입니다.
자연의 모든 만물은 원자마다 오직 하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자유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세상의 모든 경전을 다 읽고, 모든 신을 예배한다 할지라도,
당신이 내면의 신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유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에 도달하려는 것, 이것 외에 인생에 다른 목적을 두지 마십시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자유이고 그 자유는 바로 신(신성)입니다.
다른 모든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행복의
추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물질세상 속에서 행복을 찾을 때는 작은 부스러기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도둑이 물건을 훔칠 때, 그는
신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랑과 똑같은 행복을 얻습니다.
그러나 도둑은 고통덩어리가 동반된 작은 조각을 얻을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신(신성을 깨닫 것)입니다. 사랑은 신입니다. 자유는 신입니다.
속박(집착과 이끌림)이 있는 모든 것은 신이 아닙니다.
속박을 끊고
속박에 대한 영혼의 깨어남, 압제에서 일어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이것이
인생입니다.
이 투쟁에서 성공하는 것을 진화라 부릅니다.
모든 예속이 사라졌을 때 그 최후의 승리를 구원,
니르바나(nirvana), 자유라 부릅니다. 우주의 모든 원자는 자유를 얻고자 싸웁니다.
이름이나 형태에 의해, 시간이나 공간과 인과율에 의해 나의 본성이 묶여 있을 때, 나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속박
속에서도 나의 참자아는 내면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모든 속박의 사슬을 잡아 당겨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끊어보세요. 그리고
나면 내면의 숭고함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에 대한 가장 명료하고 완전한 인식에 이릅니다. 내가 무한한 정신이며, 자연의 주인이며
노예가 아님을 알게됩니다. 모든 분화와 결합을 넘어서 공간과 시간과 인과를 넘어서 나는 비로소 '참나'가 됩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도달해야 할 목표는 오직 자유입니다.
삶은 자유에 대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사회철학과 사상의 과잉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자유(육체적,정신적,영적인)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인류 최고의 이상입니다. 이 자유를
위한 길에 가로놓인 사회법칙들은 인간에게 조금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향한 발걸음은 그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베단타(고대종교철학서)는 무한이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업(業)업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짓습니다. 그것은 사슬과 같아서 우리의 목을 묶어 한계로 끌어옵니다.
사슬을 끊고 자유로워지십시오,
당신의 발로 사회통념을 짓밟으십시오. 인간의 본성 안에는 법이 없습니다.
운명도 숙명도 없습니다. 어떻게 무한 안에 법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유는 무한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유는 무한의 본질입니다. 자유는 무한의 타고난 권리입니다.
자유로워지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어떤 마음도 취할 수 있습니다.
한 배우가 무대에 나와서 거지의 역할을 한다고
합시다. 그 배우와 실제로 거리를 떠도는 진짜 거지를 비교해 보십시오.
어쩌면, 배경도, 상황도 말투도 다 똑같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다른 것이 있습니다!
거지 역할을 하는 배우는 자신이 거지가 된 상황을 즐길 것이나, 진짜 거지는 거지로서의 비참함에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한 사람은 자유로우나 다른 한 사람은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자신이 거지가
된 상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배역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진짜 거지는 거지로서의 상태에
너무 익숙해졌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상태를 견디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같이,
진정한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한, 우리는 진짜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세력에 부대끼며 세상 모든 것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해
도와 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상의 존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코 아무런 응답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도움이 오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고 흐느끼고 희망하면서 일생이 지나갑니다.
이와 같은
세상의 환상이 날마다 계속됩니다.
자유를 향한 몸부림
모든 종교에는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모든 도덕과
이타심(利他心)의 토대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초라한 몸뚱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머리에
불타는 숯 한 덩어리가 놓여 있다면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치겠습니까.
인간이 자연의 노예가 더 이상 아님을 이해하는 사람이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만인의 평등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 모두 평등하다는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까요?
먼저 경직된 두뇌와, 학습되어진 지식으로부터 자유롭고 순수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의
참자아 안에 있는 순수한 진리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가리는 모든 미신을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모든 완전함, 모든 능력이
다른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게 아니라,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자유를 얻고
평등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다른 모든 이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물리적
정신적 혹은 도덕적인 어떤 능력도 행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더 낮은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됩니다.
그때야 그는 평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속박당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감금된 채로 남을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속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유로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그 순간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이것이 곧 자유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자유로 향한 갈망은 모든 생명의
본질입니다.
소망이나 바람이 있는 한, 그것은 불완전하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완전하고 자유로운 존재는 어떤 바람도 가질 필요를 못 느낍니다.
이미 당신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베나레스의 원숭이들은 몸집도 크며 때로는 거칩니다. 어느 날 내가 원숭이들 앞을 지나갈 때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겁을 주며 내 발을
잡아채려 했습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빨리 달릴수록 원숭이들도 빨리 쫓아왔고 급기야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때, 내게 소리치는 낯선 사내를 보았습니다.
"녀석들을 똑바로
쳐다봐!"
나는 고개를 돌려 원숭이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원숭이들은 뒤로 움찔 물러나더니 마침내 달아났습니다.
그것은 내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삶의 고난은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치기를 그만 둘 때 물러갑니다.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절대로 도망치지 말고 세상과 마주서야 합니다.
세상의 두려움과 유혹에 용감히 맞서야 합니다.
인간의 몸이라는 사원 안에 신이 앉아 있음을 깨달은 순간,
모든 인간 존재에게서 경외를 느끼며,
인간 안에서 신을 본 순간,
나는 속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나를 구속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언제라도 자유롭습니다.
당신은 영혼이며, 자유롭고 영원하며, 영원히 거룩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한 순간에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지고의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장 고결합니다.
영혼 위에 서 있는, 영혼 안의 영혼에게
예배합시다. 그 기초가 영혼이 되게 합시다.
그 중심이 영혼이 되게 합시다. 그 정점이 영혼이 되게 합시다.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지 말고 오직 내면에 존재하십시오!
그것이 궁극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상을 끌어내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육체라는 생각, 물질로서의-죽고 둔하고 지각없는-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빛나는 불멸의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모든것은 자신안에서구함에 있습니다